칠삭둥이로 태어나 병약했던 비발디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3월 4일, 당시 유럽 음악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비발디는 베네치아의 유명한 성 마르코 대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그가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과정은 좀 특이하다. 조반니는 어릴 때 이발관의 조수로 일했는데, 당시 이발관에는 여러 가지 악기를 갖다 놓고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악기를 연주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조수로 일하던 조반니는 손님들이 바이올린 켜는 것을 등 너머로 배워 35세 때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당의 바이올린 주자가 되었다.

1677년 조반니는 재봉사의 딸과 결혼했다. 이듬해 첫 아이가 태어났고, 그가 바로 안토니오 비발디이다. 비발디는 7개월 만에 태어난 칠삭둥이로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반니는 어린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직접 바이올린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작곡가 코렐리에게 작곡을 배우도록 했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실력은 일취월장해 나중에 아버지와 함께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명 바이올리스트 명단에 오를 정도였다.
비발디는 15살 때인 1673년부터 10년 동안 성직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유난히 병약한 아들을 신께 바치고 싶은 부모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부가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 10년 동안에도 비발디는 집을 떠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고 집에서 성직자 수업을 받는 것은 당시에는 대단히드문 경우였다. 그 이유는 비발디의 건강이 아주 안 좋았기 때문이다. 병명은 천식이었다. 천식 때문에 다른 사제 지망생들과는 달리 집에 거주하며 성직자 수업을 받는 특혜를 누렸다.
건강이 나쁘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비발디의 경우를 보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미래의 음악가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이득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집에 머무는 덕분에 비발디는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더 배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틈날 때마다 성 마르코 대성당의 연주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1703년, 비발디는 사제 서품을 받았다. 당시 사제는 상당한 격무에 시달렸다. 일단 사제가 되면 시시때때로 열리는 수많은 미사를 집전해야 한다. 하지만 천식을 앓고있던 비발디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사제들은 미사를 접전할 때 라틴어로 된 성구를 노래로 낭송했다. 사제 수업의 상당 부분이 라틴어로 된 성구 선율을 익히는 것일 정도로 낭송조의 노래를 부르는 능력은 사제의 필수요건이었다. 가창력이 빼어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사제가 되려면 신도들이 듣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했다. 하지만 비발디는 천식 때문에 장시간 낭송조의 성구를 부르며 미사를 이끌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제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이자 가장 버거운 임무인 미사 집전을 면제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미사를 집전하지 않는 신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사를 집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천식으로 음악에 집중하게 된 아이러니

사제의 임무로부터 해방된 비발디는 1703년 피에타 병원 부속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사가 되었다. 피에타 음악원은 고아나 사생아 출신의 소녀들을 데려다 국비로 음악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당시 베네치아에는 이런 종류의 음악원이 네 군데 있었는데, 이곳에서 훈련받은 소녀들은 일요일이나 축제 때마다 교회에서 연주를 했다. 비발디는 매우 유능한 교사로 소녀들로 구성된 악단이 뛰어난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했다.소녀들은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이들의 연주는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였다.

피에타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일하던 처음 10년 동안, 비발디는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12개의 트리오 소나타와 최초의 협주곡집 <조화에의 영감>을 비롯한 여러곡을 작곡했다. 이 작품들은 고향 베네치아는 물론 멀리 암스테르담에서도 출판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는 유럽 전역에 널리 이름을 알린 유명 작곡가가 되었다.
1713년 피에타 음악원의 최고 책임자 가스파리니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비발디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바로 이 무렵 비발디는 오페라 작곡을 시작했다. 1714년에서 1718년까지 무려 10편이 넘는 오페라를 베네치아에서 공연했는데, 당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비발디는 오페라 흥행사 같은 것이었다. 이 시기에 오페라 공연 때문에 음악원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1713년 오페라 공연을 위해 피렌체를 방문했으며, 1720년부터 1723년까지 3년 동안은 만토바에 머물며 3편이 넘는 오페라를 공연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오페라를 공연하기 위해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를 방문했다.
1735년 비발디는 피에타 음악원의 합주장에 임명되었으나 3년 후인 1738년, 너무 자주 자리를 비운다는 이유로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타 음악원과의 관계는 지속했다. 음악원의 오케스트라를 위해 협주곡을 작곡해 주고, 베네치아에 머물 때는 리허설에도 참석하는 등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유명한 작곡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말년은 행복하지 않았다. 1739년 비발디는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갔다. 베네치아 청중이 그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 무렵 그는 자신의 협주곡 20곡을 헐값에 내놓았다. 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빈민촌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타향에서 고생하다가 1741년 7월 28일 객사했다. 그리고 빈곤자 신분으로 빈의 슈페탈 묘지에 매장되었다.

음악가로서 비발디의 업적은 새로운 바이올린 연주기법을 개발하고, 바로크 시대의 모델이 된 협주곡 형식을 확립시켰다는 데 있다. 그 유명한 <사계>가 대표작이다. 그의 협주곡은 모두 세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악장은 빠르고 2악장은 느리고 3악장은 다시 빠르게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비발디가 확립한 3악장 형식의 협주곡은 바로크 시대를 거쳐 고전주의 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비발디는 당시로서는 낯선 개념인 표제음악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작곡가로 꼽힌다. 바로크 시대에는 기악곡에 제목이나 해설을 붙이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비발디의 음악 중에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이 많다. 그 유명한 <사계>를 비롯해 <바다의 폭풍>, <즐거움>, <밤>, <귀염둥이>, <의심>, <불안>, <안식>, <애인> 등이다. 특히 <사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제목 외에 각 계절의 모습과 풍광을 묘사한 소네트(정형 서정시)를 붙여 ‘음(音)으로 그린 풍경화’를 만들었다.
제목이나 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묘사적인 기법을 사용한 것도 비발디 음악이 갖는 특징이다. 예를 들어 <사계>에는 새들의 노랫소리, 개 짖는 소리, 폭풍우 소리, 천둥 번개 소리, 무더운 여름날 목동들이 낮잠 자는 모습, 추운 겨울날 이를 덜덜 떨며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걸어가는 모습 등 다양한 소리와 모습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비단 <사계>뿐만 아니라 제목이 붙은 그의 기악곡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사실 이런 묘사음악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낯선 개념이었다. 이렇게 추상적인 음악에 구체성을 부여하려는 비발디의 시도는 이후 많은 작곡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비발디가 오늘날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칭송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미사 집전이라는 의무에서 해방돼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병인 천식이 음악가로서의 경력을 쌓는 데는 큰 도움이 됐다. 만약 다른 신부들처럼 일했다면 그토록 열정적으로 음악을 가르치고 작곡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저 ‘음악에 조금 소질이 있는 사제’ 정도로만 알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무명의 사제 음악가로 역사 속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토니오 비발디의 천식은 그의 축복이었다.

미니인터뷰 - 알레르기내과 장윤석 교수

※ 해당 기사와 사진은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의 저작물로 임의로 복사, 수정 ,변형, 재가공하여 게시, 배포하였다면 이는 저작권자인 당사의 허가없이 2차저작물을 작성한 것으로 저작권 위반에 해당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