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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랐으나 일찍 저문 아이, 더뎠으나 결국 꽃피운 아이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빨랐으나 일찍 저문 아이 더뎠으나 결국 꽃 피운 아이 인터뷰.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 글.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건강문화 매거진 나음 메인 이미지

더뎠으나 결국 꽃피운 아이

미니인터뷰.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

아이가 태어났다. 자라면서 걷고 말하고, 모두가 기적과 같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다른 또래 아이에 비해 말이나 수 세기가 눈에 띄게 뒤처진다. 좀 늦될 수도 있지.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침내 찾아간 병원에서 날벼락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발달장애라고. 남들보다 뛰어나야지 잘 살 수 있다며 선행학습도 시키고 조기유학도 보내는 세상에 오히려 남만 못하다니. 부모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당연하게도, 옛날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또 부었던 김득신

밑빠진독에 물을 붓고 또 부었던 김득신

조선 중기의 사람으로 백곡 김득신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바로 임진왜란 때 생명을 던져가며 진주성을 지켜낸 명장 김시민이고, 아버지 김치는 경상도 관찰사와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당당한 명문 집안이었다. 그런데다가 김득신의 태몽에 노자가 나왔다던가. 당연히 집안의 명성을 드날리는 훌륭한 인재로 자라날 것이라고 많은 기대를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득신은 총명하기는커녕 ‘둔하고 어리석고 소박했다(糊塗魯質)’. 특히 건망증이 몹시 심했다고 한다. 남들은 서너 살에 시작하는 글공부도 10살 넘어서 겨우 시작했고, 그나마 책을 읽으며 공부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도 못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김득신은 늘 <사기>의 백이전을 외우려고 애썼지만, 자꾸 잊어버렸다. ‘이다음에 뭐지?’ 하면서 쩔쩔매고 있는데 김득신의 마부가 막힘없이 줄줄 외웠다. 김득신이 탄복하며 “차라리 내가 말을 몰아야겠다!” 하고 있자니 마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거 나리가 늘 읽으시던 거 아닙니까. 덕분에 제가 다 외워버렸습니다!” 글공부를 하기는커녕 글자는 한 자도 모르는 마부가 몽땅 외워버릴 정도로 읽고 또 읽었지만, 마침내는 외우지 못했다는것이니 안타까울 정도이다.
어째서일까? 김득신이 어릴 때 천연두를 앓은 탓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꼭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수도 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발달장애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의 일화들로 미루어보면 김득신은 발달장애, 그리고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못한 지적 능력을 타고났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살기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김득신은 놀라울 만큼 포기할 줄을 몰랐다.


고서

조금 전 마부가 책을 외워버린 일화를 다시 살펴보자. 비록 김득신은 기억력이 나빠서 책을 외우지 못할지언정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노력해도 외우지 못했던 백이전을 ‘1억 1만 3000번(당시 1억은 십만을 뜻하는 단위, 요즘 수로는 11만 3천 번)’이나 읽었고, 사서삼경은 6, 7만 번씩 반복해서 읽었으며 다른 책도 수천 번씩은 읽었다. 그래서 김득신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고 했으니 반복 또 반복해서 읽은 것이다. 그의 형편없는 기억력을 생각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었지만, 붓고 또 부어 그렇게 천 번을 붓고 만 번을 부었다. 그래서 마침내 흘러내린 것보다 남은 것이 많아졌고, 김득신은 어엿한 시인이 됐다. 그가 쓴 시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효종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다. 1642년 김득신은 38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급제한다.
“한유 문장 사기를 천 번을 읽고서야 금년에 겨우 진사과에 합격했구나.”
김득신은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이렇게 적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잘 알았고, 그걸 아쉬워하면서도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김득신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서 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김득신의 이야기를 할 때 늘 함께 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 김치의 이야기이다. 아들의 사정을 알게 됐을때, 아버지는 정말로 눈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집안의 조상님들에게 면목이 없고, 남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가슴을 헤집고, 과연 나 없이 이 아이가 혼자 살 수 있을까 암담했으리라. 그렇지만 김치는 아들을 계속 격려했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고 한다. 만약 아버지의 격려가 없었더라면, 김득신의 노력보다 결과에만 초점을 맞췄더라면, 김득신은 10만 번씩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득신은 자신의 묘비에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획을 긋지 마라. 나보다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도 없겠지만 마침내 성취한 게 있었으니 그저 노력한 데 있었다”라고 적었다. 그걸 보았을 때 저승의 아버지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못한 지적 능력을 가졌지만 마침내 ‘자신’을 완성했고, 그것은 김득신보다도 나은 자질을 가진 자식들도 이루기 어려운 성취였으니까.


아버지의 다그침에 넘어진 사도세자

아버지의 다그침에 넘어진 사도세자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김득신이 죽고 나서 수십 년 뒤, 한 왕자가 태어난다. 세자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마침내 태어난 귀하디귀한 아들이었다. 바로 사도세자였다. 사도세자는 몹시 총명한 아이였다. 겨우 4개월에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두 살에 한자를 배우고 쓸 수 있었으며, 비단옷은 사치스럽고 사치는 나쁜 것이라며, 무명을 입으려고 했다. 그냥 똑똑한 게 아니라 사리판단이 빠르기까지 했다. 조선왕조 역대 왕중에서 손꼽히는 천재 정조가 그의 아들이었으니 그 머리가 어디에서 왔겠는가.
영조는 아들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마련했다. 아이를 직접 안고 어르면서 신하들에게 이 아이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고, 최고의 선생님을 불러왔으며, 태어난 지 고작 100일 된 아이를 어머니 영빈 곁에서 떼어 세자궁으로 보냈다. 아이지만 세자로서의 위엄을 세운다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자의 친어머니 영빈은 신분이 미천하다 보니 맘 놓고 아들을 찾아오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영조는 아들을 쥐어짜댔다.
분명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그러다 보니 <자치통감> 같은 어려운 책 읽기도 빨리 시작했다. 요즘 말로 선행학습을 한 건데, 어느 날 사도세자가 눈병이 나서 어지럽다고 호소했다. 세자의 스승들이 ‘공부를 좀 쉬게 해주자’라고 말하자 영조는 “세자는 맨날 공부하라면 눈 아프다고 하지. 치료해주지 마!”라고 화를 벌컥 낸다. 사도세자가 겨우 8살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사도세자를 놀게 해주거나, 장난감을 선물한 사람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과연 사도세자의 하루가 어떠했을까. 엄마아빠를 만나는 일은 드물고, 어쩌다 만나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은 “성적표는?”이다. 만약 성적이 나쁘면 호된 꾸지람이 이어진다. 상상만 해도 괴롭다. 사도세자가 책 읽는 문과보다는 예체능과였다는 말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원래 조선 왕실은 말 달려 여진족과 싸우던 무인 가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재능 이전에 어린아이는 잘 놀고 또 듬뿍 사랑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영조는 세자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면 “너 거짓말하지?” 하며 다그치고 또 다그쳐서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듣고야 말았고, 나랏일을 맡기더라도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며 닦달을 해댔다. 보다 못한 신하들이 ‘세자는 잘하고 있으니 좀 두십시오’라고 항의를 할 정도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득신과 사도세자

심지어 외모까지도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영조는 신하들에게 세자가 뚱뚱하다며, 잘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웃긴다고 험담을 했다. 영조는 초상화를 봐도 날씬한 체격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고작 10살 아이에게 뚱뚱하다고 놀리는 것은 부모 이전에 어른답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도세자는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긴장하고, 긴장하게 되니 실수를 하고, 실수를 하니 다시 아버지가 화를 내는 최악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 모두의 기대를 모으던 천재 아이는 극심한 정서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툭하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됐고, 마침내는 좁디좁은 뒤주 안에 갇혀 굶어 죽게 됐다. 영조는 죽은 세자에게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사도라는 시호를 내려주긴 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영조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 영특하던 아이가 어쩌다 저렇게 됐느냐고. 오히려 남보다 부족한 아이에게 성취를 안겨줄 수 있었던 김득신의 아버지와는 너무나도 다르지 않느냐고.
아이의 타고난 자질이 좋은지 나쁜지는 하늘에 달린 일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모든 것이고, 그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주느냐는 결국 부모의 손에 달린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괜찮아”라는 격려와 “넌 왜 못해?”라는 다그침. 결국 김득신과 사도세자의 운명을 가른 것은 이처럼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는 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이지 않았을까?


미니인터뷰 -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

요즘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정신의학과적 증상에는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요즘 청소년 사이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우울증 증상입니다. 우울증은 단지 기분이 슬프고 우울한 것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분노를 느끼며,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무기력한 느낌,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 등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잠을 자기 어렵거나, 반대로 너무 많이 자기도 합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초조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증상이 있으면 공부하기 어렵겠지요. 초등학생들에게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많이 나타납니다. 세부적인 일에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고, 계획을 세워 우선순위대로 공부하는 것, 깊게 생각하거나 오래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하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지금 해야만 만족하는 아이들입니다. 앉아 있는 자세가 바르지 않은 경우가 많고, 사소한 일에도 주의가 쉽게 흐트러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수험생을 비롯해 학업에 부담을 느끼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신건강 적신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쉽게 짜증을 내거나, 울거나, 학업을 잘하던 아이가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호소하는 것, 사소한 일에 걱정이 유난히 많아지는 것, 먹고 자는 습관이 변한 것 등이 모두 자신을 도와 달라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이유 없는 복통, 두통, 근육통이나 요통, 소화불량, 가슴 답답함 같은 신체 증상으로 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만약 아이가 모든 일에 의미가 없다거나,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고 하거나, 죽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직접 표현한다면 더 분명한 신호이며, 이미 상당히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증상을 호소할 때 의지가 약하다거나, 마음이 여리다거나, 게으르다거나, 하기 싫은 것을 피하려 한다고 쉽게 판단하지 말고, 충분히 아이의 말을 들어보고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사도세자와 영조의 대화에 많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자녀와의 대화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첫째, 아이들은 누구나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잘한 것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정이나 칭찬을 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오히려 어른들이 혼란스러워합니다. 다른 아이, 또는 부모님의 마음 속에 있는 이상적인 아이를 기준으로 삼지 말고, 바로 ‘우리 아이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칭찬해주세요. 아무리 부족해도 어제보다 더 노력하고 조금 더 잘했다면, 충분히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칭찬은 아이의 마음을 여는 열쇠이고, 인정받은 아이는 도움이 필요할 때 더 쉽게 부모님에게 마음을 열고 도움을 청합니다. 둘째,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생각과 경험을 물어봐 주세요. 사소한 일이라도 무엇이 즐거웠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떤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사고력을 키워주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아이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부모님과 서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아이도 생각하는 경험을 쌓을 겁니다. 아이가 선택하는 것을 꼭 그대로 따라주실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논하고 대화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부모님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당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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