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신건강의학과 홍정경 교수
봄에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몸이 느끼는 에너지의 변화와 마음이 따라오는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겨울 동안 움츠러들어 있던 신체는 늘어난 햇빛을 신호로 먼저 깨어나지만,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회로는 그 속도를 따라잡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이 차이가 봄철에 나타나는 다양한 불편 증상의 배경이 된다. 가장 큰 요인은 일조량의 급격한 증가다. 우리의 생체 시계는 뇌의 특정 부위를 중심으로 하루의 리듬을 조절하는데, 봄에는 낮이 빠르게 길어지면서 이 리듬이 다시 맞춰져야 한다. 문제는 이 조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침 햇빛이 갑자기 강해지면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의 분비가 예정보다 빨리 줄어들고, 그 결과 충분히 자지 못했는데도 몸은 깨어 있는 듯한 상태 이른바 피곤하지만 긴장된 상태가 나타나기 쉽다. 기분과 관련된 호르몬도 마찬가지다. 햇빛이 늘어나면 기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활동도 함께 증가한다. 하지만, 그 변화가 너무 빠를 경우 오히려 초조함, 예민함, 안절부절못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행복감이 차분히 올라오기 전에, 몸만 앞서 나가 버리는 셈이다. 여기에 봄철 알레르기라는 변수가 더해지기도 한다. 알레르기 반응 과정에서 분비되는 염증 신호가 뇌 기능에 영향을 주어, 의욕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느낌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봄은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커지는 계절이다. 봄은 활동과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에 맞추지 못한다고 느낄 경우 부담감이나 위축감이 커질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은 생물학적 변화와 맞물려 증상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변화들은 흔히 비슷한 얼굴로 나타난다. 졸리고,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는 상태. 하지만 모두 같은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몸의 리듬이 먼저 흔들린 경우도 있고, 감정 조절의 균형이 무너진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그 둘이 겹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춘곤증은 봄철 일조량과 기온 변화에 몸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생리적 반응에 가깝다. 주된 증상은 낮 동안의 졸림과 집중력 저하로, 밤잠의 질이 흔들리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생활 리듬을 정돈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호전된다. 하지만 봄에 나타나는 모든 불편함이 춘곤증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계절 변화가 우울 증상을 촉발하거나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기분 저하가 수주 이상 지속되고, 즐겁던 일에 대한 흥미가 줄거나, 자책감과 불안·초조가 동반된다면 단순한 계절 피로와는 다른 선상에 있다. 계절성 우울증은 겨울에 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봄에 증상이 시작되거나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봄철 우울 증상의 한 가지 특징은, 마음은 가라앉아 있는데 몸은 계절 변화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각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겨울처럼 기분도 낮고 에너지도 낮은 양상과 달리, 봄에는 빛의 영향으로 신체 에너지가 먼저 올라오면서 불안, 초조, 안절부절못함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마음의 감기’로만 설명되기보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뇌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생물학적 변화와 더 가깝다. 계절 변화에 따른 호르몬 변동, 면역·염증 반응의 영향이 겹치면서 기분 조절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여기에 심리적 요인도 더해진다. 주변은 꽃이 피고 활기차 보이는데, 자신만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느껴지는 ‘심리적 대조’가 우울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일상에서 말하는 ‘봄을 탄다’는 상태는, 춘곤증과 계절성 우울증 사이에 놓여 있는 회색지대에 가깝다. 질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단순한 나태함으로 넘기기에는 간과하기 어려운 의미 있는 상태로, 몸과 마음의 변화를 점검해 보라는 신호로 이해할 수 있다. 다행히도 생활 습관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다. 과도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는 졸림을 부추길 수 있어, 흰 쌀밥이나 면보다는 단백질과 제철 채소를 곁들이는 편이 낫다. 햇빛은 많이 쬐기보다 아침의 부드러운 빛을 규칙적으로 받는 것이 생체 시계 적응에 도움이 된다. 밀려오는 졸음을 무작정 참기보다는, 오후에 15–20분 정도의 짧은 낮잠이 집중력 회복에 유리할 수 있다. 또한 카페인과 알코올 섭취를 조절하고, SNS 속 화사한 봄 풍경과의 비교에서 잠시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기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작은 조정들이 모여, 몸과 마음이 봄의 속도에 맞춰가는 데 도움을 준다.
봄철의 변화로 나타나는 기분 저하와 무기력은 대부분 일시적이지만, 일부에서는 자연스럽게 호전되지 않는다. 증상이 오래 지속되거나 점점 일상생활에 부담을 주기 시작한다면, 단순한 계절 반응을 넘어선 신호일 수 있다. 이럴 땐 스스로만 견디려 하기보다 전문의와 상의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봄이 왔는데도 마음이 무겁거나,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하루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개인의 예민함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계절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이를 구분하고 이해하는 것이, 계절을 건강하게 건너는 첫걸음이다.
계절 변화에 따른 일시적 반응일 수 있음
우울 증상 가능성 고려
전문의 상담 권장
*최근 2주 이상을 기준으로
홍정경 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소속으로
수면장애, 암환자의 스트레스 관리,
공황장애 등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