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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세상은 왜 그토록 어지러웠을까?
반 고흐의 세상은 왜 그토록 어지러웠을까? 고흐 상반신 일러스트

2015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메니에르병으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분석 결과를 보면, 2010년 7만5830명이었던 메니에르병 환자는 2014년 11만1372명으로 42.6% 늘었다. 연평균 10.1% 증가한 것이다. 몇 년이 더 흐른 지금은 더 많이 증가했을 것이다. 메니에르병은 프랑스의 의사 메니에르(P. Meniere)에 의해 처음으로 규명된 질환으로 예전에는 서구에서 주로 발생했으나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고흐의 자화상

말년에 통증을 호소하며 귀를 자른 빈센트 반 고흐가 어쩌면 메니에르병을 앓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래서 미술인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병이다. 한 의사는 방송에서 반 고흐가 난청과 이명 때문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귀가 윙윙 거리니까 자신의 귀를 자른 것이라고 말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반 고흐가 처음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의사였던 펠릭스 레이(Felix Rey)는 그를 간질이라고 진단한다. 주기적인 흥분과 우울의 교차, 예민한 상태, 환각 증상, 발작 중 보이는 위험한 행동 등이 간질을 진단한 이유였다. 현대에 와서 반 고흐에게 진단 내려진 병은 메니에르병뿐만이 아니라 훨씬 많았다. 모두 합치면 30여 종이라고 하니, 생각만해도 얼마나 하루하루가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프다.
특히 반 고흐가 매일 마셨던 술인 압생트에는 ‘튜욘’이라는 화학물질이 들어있는데, 이 튜욘은 필요 이상 우리 몸에 들어오면 환각 작용이 일어난다. 매일 하루 한 병 이상 압생트를 마셨던 반 고흐는 시간이 흐를수록 유독 진한 노란색을 사용했는데 사람들은 고흐의 작품에 짙은 노란색이 많은 이유가 압생트라는 술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고흐의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반 고흐의 그림 중 단연 아름답고 인기도 많다.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아를에서 동료였던 폴 고갱과의 성격 차이로 다툰 후 발작을 일으키고 자신의 귀를 자르는 자해 소동을 벌여 주민들의 신고로 가게 된 정신병원에서 그렸다. 아를에서 가까운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 있었던 이 병원에서 반 고흐는 자신의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바라며 병원 주변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긴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자신의 앞가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를 받아서 쓴다는 죄책감과 목사가 되길 바란 부모님의 기대를 꺾은 미안함, 아를에서 꿈꾼 화가 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 내려 생긴 실망감, 고갱과의 다툼으로 생긴 상처 등으로 반 고흐의 마음은 황량했을 것이다. 거기에 환각 작용과, 요즘 병명으로 메니에르병까지….
반 고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움과 스스로 마음 다스림을 반복하며 밀도 높은 작품을 완성해낸다. 여기에서 위대한 예술가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가 고통에 굴복했다면 우린 그의 걸작을 만나지 못했으리라.
“발작이 심하거나 정신상태가 불안정할 때는 그림조차 그릴 수 없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이다. 반 고흐는 스스로 발작이 심하거나 정신이 불안정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 순간에는 본인 역시 그림을 그릴 수 없음을 감지했다. 그러므로 어쩌면 반 고흐의 아름다운 작품들은 병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렸다기보다 그 순간을 이겨내고 오히려 마음의 평정심을 찾을 때 그렸을 가능성도 있다. 즉 그의 병이 이토록 황홀한 <별이 빛나는 밤>을 탄생시켰다기보다, 그 병을 이기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반 고흐의 예술적 정신력이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믿는다. 반 고흐의 소용돌이 패턴은 밤하늘이 아닌 풍경을 그릴 때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그의 건강 상태가 비교적 안정적이었을 때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상은 그대로인데 반 고흐의 정신이 어지러웠던 것이 아니라, 너무도 어지러운 세상, 그는 그것을 똑바로 직시했던 것 아닐까? 별이 빛나는 밤 속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이 나는 오히려 조화로운 질서를 가진 소란스러움으로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마구 휘갈긴 소용돌이가 아닌 나름의 율동감을 지닌 터치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오늘 아침, 해 뜨기 전에 창문을 통해 오래도록 시골의 경치를 바라봤단다. 새벽 별이 정말 크게 보였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당시,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썼던 편지 중의 일부다. 그는 이미 이 작품을 그리기 1년 전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며 테오에게 마음의 크기를 별빛의 크기로 표현한다는 말을 한다. 1년 사이에 반 고흐가 그린 밤하늘 속 별빛이 유독 커졌다. 그는 무엇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진 것일까?
자신의 삶은 물질과는 늘 평행선이라고 안타까워했던 반 고흐. 자신의 작품이 언젠가는 반드시 물감 값보다 비싼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던 반 고흐…. 그런 그는 이 작품을 그리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무한대로 키워나갔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래야만 버틸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유명한 화가일수록 그에 대한 이야기는 늘 비슷한 스토리의 되풀이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그 화가들이 그린 작품을 더 오래 바라봐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낸 수 많은 이야기가 아닌, 오로지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을 늘린다면 진짜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가 조금은 들린다. 내게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한 예술가의 포효가 아니라, 마음이 힘들고, 정신이 자신을 갈취하는 것 같은 괴로움에 짓눌려도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건하고 성실하게 이겨내려 했던 한 가난한 예술가가 남긴 생의 가장 아름다운 조화로 느껴진다.
하지만 반 고흐는 이제 흐뭇할 것이다. 그의 말이 맞았다. 세상을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그의 작품을 사랑한다. 지금도 나 같은 사람은 그가 남긴 말처럼 반 고흐에 대한 글을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 쓰고 있고, 우리는 어느 날 또 다시 반 고흐에 대한 대화를 스스럼없이 나눌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은 반드시 나의 그림을 알아보게 될 것이고, 내가 죽으면 틀림없이 나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구자원 교수가 반 고흐의 주치의라면?

구자원 교수가 반 고흐의 주치의라면?

메니에르병이란 어떤 병인가요?

재발성 어지럼증, 청력 저하, 이명, 이충만감을 특징으로 하는 내이(속귀)질환입니다. 어지럼증과 함께 귀가 먹먹해지면서 잘 안 들리고, 이명이 동반되기도 하는데요, 초기에는 어지럼증이 있을 당시에만 이명이 생기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다가, 발작이 반복되면서 청력은 떨어져 회복되지 않고 평상시에도 이명이 지속됩니다. 즉 메니에르병이 진행되면 늘 이명이 있으면서 잘 안 들리고, 한 번씩 발작이 반복될 때마다 구역질, 구토와 함께 세상이 빙빙 도는 어지럼증이 생깁니다.

메니에르병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달팽이관과 전정기관 안에는 내림프액이 순환합니다. 내림프액은 매일 일정한 양이 만들어지고 또 일정한 양이 흡수되면서 항상 일정한 양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내림프액이 과도하게 생성되거나 흡수에 문제가 생겨 내림프액이 필요 이상으로 쌓이면, 달팽이관과 전정기관이 점점 부풀면서 내이의 기능에 문제(난청, 이명, 어지럼증)가 생기는 메니에르병을 유발합니다.

교수님이라면 반 고흐에게 어떤 처방을 하시겠어요?

반 고흐의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고 이명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도 발작이 일어날 때 ‘세상이 빙빙 돈다’는 구절이 있고요. 한쪽 귀 이명에 발작성 어지럼증을 호소한 것을 보면 반 고흐는 메니에르병 혹은 메니에르증후군을 앓고 있었습니다.
메니에르병 초기에는 숙면과 스트레스 조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염식을 하며 물을 많이 먹도록 권하고, 내림프부종을 줄이기 위해 이뇨제와 내이혈류를 개선시키기 위한 약물 처방도 병행합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메니에르병이 진행하거나 메니에르증후군으로 인한 현훈발작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생활습관 교정과 약물치료만으로 조절이 되지 않아 내림프낭감압술과 같은 수술이나 귓속에 약물을 주입하는 시술을 합니다. 반 고흐가 폴 고갱과 같이 생활하던 시기(이미 난청이 진행한 상황)에 제가 진찰했다면 MRI를 촬영해 청신경종양이나 내이염의 여부를 확인해보고 귓속에 젠타마이신이라는 약물 주입술을 시술했을 겁니다. 이렇게 하면 90% 정도의 환자는 현훈발작이 3개월 안에 조절됩니다. 그래도 조절이 안 되는 10%의 환자는 수술로 현훈발작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반 고흐가 현대에 살았다면 어지럼증 없이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반 고흐가 그 당시 ‘메니에르병 진단을 받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의사 메니에르가 이 병을 처음 발표한 것이 1859년이고 그후 2년간 수차례 발표를 이어갔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그 실체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20~30년이 흐른 뒤에야 여러 의사가 비슷한 환자를 잇달아 보고하면서 이 병을 처음 소개한 메니에르 박사의 이름을 넣어 진단명을 만듭니다. 한편 반 고흐는 정신병원을 나온 후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며 정신과 의사인 폴 가쉐 박사에게 진료받고 심신의 안정을 찾게 됩니다.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한 가쉐 박사가 반 고흐를 무슨 병으로 진단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처방은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가쉐 박사는 반 고흐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가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권한 것입니다. 당시로써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던 메니에르병에 반 고흐가 심신의 안정을 찾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림 그리기는 탁월한 처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결과 반 고흐는 작은 마을에서 짧은 기간 동안 우리에게 낯익은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 냅니다. 이 병을 처음 세상에 알린 메니에르 박사와 메니에르병을 앓다 37세에 세상을 떠난 천재 화가 반 고흐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기에 살았다는 것이 참 묘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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